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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history

  • 1942. 2. 7 경상북도 경산군 북면과 하양군 안심면을 통합, 경산군 안심면으로 명칭 변경
  • 1973. 7. 1 경상북도 경산군 안심면을 안심읍으로 승격
  • 1981. 7. 1 직할시 승격과 동시에 경산군 안심읍을 대구직할시 동구 안심출장소 승격
  • 1982. 9. 1 대구직할시 동구 안심출장소에서 안심3동으로 분동
  • 1983. 3.15 대구직할시 동구 안심출장소관할구역을 안심4동으로 신설
  • 1995. 1. 1 대구광역시 동구 안심3동, 안심4동(법률 제4789호)
  • 1998. 9. 1 대구광역시 동구 안심3·4동으로 통합
  • 1999. 9. 1 대구광역시 동구 안심3·4동 주민자치센터 개소
  • 2015. 1. 1 대구광역시 동구 안심3.4동 혁신도시민원분소 개소

동명유래

안심동(安心洞)의 유래

후백제의 견훤은 원래 상주 고을 가은현 사람으로 본래의 성은 이씨였으나 후백제 왕의 악몽을 갖고 천하를 병탕코자 공산동 수대전을 시정함에 고려 태조 왕건이 정기 5천명으로 공산아래서 맞아 대전을 벌였으나 전세가 불리하여 장사 김락(金樂)과 신숭겸(申崇謙)이 죽고 제군이 패배함으로 왕건은 난을 피하여 지금의 동내동까지 이르니 적국의 추격이 없으므로 한줌의 땀을 식히고 숨을 돌리게 되니 이 곳을 안심(安心)이라고 불렸다.

반야월(半夜月)의 유래

반야월이란 명칭은 여러 가지로 옛날부터 불러왔으나 후삼국시대 왕건이 견훤군사에 패하고 이곳을 지나다가 날은 반야이고 중천에 달이 떠 있어서 이곳을 반야월이라 했다고 하며, 이조 19대 숙종께서 민정을 관찰하기 위해 전국을 순시하던 중에 이 고장에 이르러 반달이 서산에 기우는 야반중에야 희미한 달빛을 따라 한 동리를 찾으니 이를 반야월이라 하였다.

동내동(東內洞)
팔공산 초래봉 줄기 따라 서편쪽을 신서동, 동편을 동내동이라 하여 불러지게 되었다.
괴전동(槐田洞)
옛 이름은 괴명골로 조각품으로 쓰이는 괴목나무 밭이 많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금강동(琴江洞)
처음에는 냉천으로 불리어졌으나 금호강의 물이 차고 맑은 동리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사복동·대림동(司福洞·大林洞)
시인과 문한이 많이 배출하였다하여 시동(試洞)이라 불려지다가 동쪽 작은 시동은 복을 받은 동네하여 사복동, 큰 시동은 동네가 크고 숲이 우거졌다 하여 대림이라 불려졌다.
숙천동 (淑泉洞)
맑은 샘이 서너군데 있다 하여 숫샘이라 하다 현 숙천초등 교정에 물이 차고 물맛이 좋은 우물이 있다 하여 붙여지게 된 이름이다.
내곡동 (內谷洞)
냇가 계곡에 갈대가 무성하여 노곡 또는 노실이라 불려지다 골이 깊다 하여 내곡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동호동·서호동(東湖洞·西湖洞)
반야월 초등학교 북편에 작은 호수가 있어 그 동쪽을 동호, 서쪽을 서호라 하였다는 설과 초등학교 동쪽에 커다란 오동나무가 있어 동쪽을 동오, 서쪽을 서오라 칭하다가 음운변천에 의하여 현재의 이름으로 변하였다는 설도 있다.
각산동(角山洞)
우암동이라 불리어오다 송시열 후손이 하양 현감으로 부임하여 자신의 선조와 같은 호라 하여 우를 뿔 각(角), 바위 암을 뫼 산(山)으로 고쳐 불렀다.
신서동(新西洞)
원래 순 우리말인 덤밑으로 불리어오다가 이 지역의 가장 오래된 마을 동내동 서편에 신촌이란 마을이 생긴 후 동내동을 동곡, 신촌을 서곡이라 부르다 230여 년 전쯤 문화 유씨가 정착한 이후 새로운 서곡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자료담당부서 안심3.4동 박정환
  • 전화번호662-3319
  • 최종수정일2019-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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