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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history

  • 1938.10. 1경상북도 달성군 수성면 신암동
  • 1941. 8. 1대구시 동구출장소 편입(신암1동)
  • 1970. 7. 1대구시 동구 신암1동
  • 1981. 7. 1대구직할시 동구 신암1동
  • 1995. 1. 1대구광역시 동구 신암1동(법률 제4789호)
  • 1999. 9. 1대구광역시 동구 신암1동 주민자치센터 개소

동명유래

신암동(新岩洞)의 유래

그 발원은 예부터 "한골"이라는 자연부락으로 불리어졌는데, "한골" 이라는 것은 골이 깊은 계곡 대곡리(大谷理)라 해서 그 명칭이 "한골"이라고 불리어진다. 새로 생긴 강 새내, 즉 신천이 흐르게 되었는데 그 아래 바위가 많은 곳이라 하여 "신암동"이라 불리어진다. 처음에는 동산새태, 새태마을(혹은 새터마실), 신기동이라 했다. 현 신암1동주민센터 부근이 중심이 되며, 새태마실이라 불리운 것은 그 아래쪽에 많은 마을이 들어서게 됨으로 하여 이를 새로 생긴 마을이란 뜻으로 부르게 되었다.

쇠머리
1975.10. 1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신암2동 일부(신암로 북편)가 대현3동으로 되기 이전 현재의 대현3동주민센터 뒤편 일대 경사지의 형상이 소의 모습을 닮았으며, 특히 그 중에서도 소머리 부분의 윤곽이 뚜렷하여 쇠머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신암동 동편 - 동촌, 안심, 공산 주민들이 대구시내에 들어 올려면 이곳 쇠머리 마을은 시내 진입 관문으로 그 기능을 했다.)
감나무촌
6.25 전쟁 이후 대구시내 일원(칠성시장 주변)에는 피난민들의 판자촌이 밀집하여 시에서 신암2동 감밭(현재의 강남아파트) 외 몇개소를 피난민 거주지역 지역으로 지어, 시내 곳곳에 산재한 난민들을 시지정 장소로 이주시켰다. 당시 강남아파트 일대는 야산을 개간하여 과수원으로 감나무를 많이 심었으며 동신초등학교 서편 경사지는 복숭아 나무를 재배하였다. 대구시의 계획에 의거 시내 중심지의 피난민들이 감밭으로 이주함에 따라 자연부락이 형성되었고 이 마을을 감나무촌으로 부르게 되었다.
쌍둥이못
송라지(현재 동신초등학교와 송라아파트 부지 전체가 하나의 못)가 경부선 철도의 현 위치 이전에 따라 큰 못이 두 개로 나누어져 이를 쌍둥이 못으로 부르게 되었다. (현재는 없음)
기와골
현재 신암2동주민센터 부지 일대는 본 건물 신축 이전까지 기와를 굽는 기와공장으로서 이를 기와굴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 자료담당부서 신암1동 김아람
  • 전화번호053-662-3604
  • 최종수정일2020-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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