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동
- 공산동(公山洞)의 유래
- 지경(地境)
- 경산군과 달성군의 경계를 이룬다는 뜻과 갓바위에 석조불을 창건할 당시 임금이 머물렀던 지점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월송정(月松亭)
- 유인이 밤길을 가던 중 마을 뒷산 좌우에 노송이 울창 야경의 소나무 경치가 더욱 멋지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 도장골(道臧骨)
- 약 1500여 년 전 신라시대 스님이 몸을 숨긴 지역이라 하여 도장이라 명하고 건립한 사찰을 도장사라 하였으나 사찰은 없어지고 이 곳에 마을이 형성되어 이 이름이 현재 불리어오고 있다.
- 학부마을(鶴浮)
- 팔공산 학수암에는 큰 학이 많이 서식하고 있다 하여 붙여졌으며 외학부, 내학부로 나누어졌으나 내학부 마을은 현재 없어지고 외학부가 학부마을 이루고 있으며 일명 "학봉"이라고도 한다.
- 백안(百安)
- 마을형상이 배 모양 같다하여 배안이라 하다 마을 호수가 100호 이상 되자 100호 모두가 편암함을 기원하기 위해 백안으로 불려졌다.
- 속골
- 고려시대에는 큰 소골이라 하였고 숙종 때는 둔기고 둔곡이라 부르다 1910년 경 속골로 변하였다.
- 수태골(水台滑)
- 이 마을 옆 내가의 물이 유난히 맑고 깨끗하다 하여 수태라고 하게 되었다.
- 용천(龍泉)
- 마을에 지정사라는 사찰이 있는데 근처 동굴안에 용이 살고 있었으며 이 용이 굴 앞 용수를 먹고 하늘로 승천하였다 하여 용천이라 불리어졌으며 약 100여 년 전에는 갈방 또는 가루뱅이라고도 불려졌다.
- 국실(菊室)
- 처음에는 부인사의 소재지로서 부인동이라 하다 마을 오른쪽 산에 벌봉이라는 봉우리가 있고 벌이 많이 서식하고 들국화가 많이 피어 있어 벌이 국화를 좋아한다는 뜻에서 국곡으로 불리다가 국실로 변하였다.
- 미대(美垈)
- 조선 명종 때 채송표라는 선비가 이 마을을 처음 개척하여 미대라 명명하였는데 당시 이 마을에 있었다는 미대사라는 사찰이름도 같은 연유이다.
- 구암
- 약 200여 년 전 현동수라는 사람이 마을을 개척하였으며 마을 옆에 거북과 같은 바위가 있어 구암이라 불렸다.
- 지묘동(智妙)
- 고려 태조 왕건이 공산전투에서 신숭겸장군의 도움으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자 신장군의 충성심을 알고 왕이 이를 추모하기 위해 그 자리에 지묘사라는 절을 세웠으나 현재는 없어지고 이름만 남아 있다.
- 송정동(松亭)
- 마을 중심에 소나무 정자가 큰 것이 있다 하여 붙어진 이름이며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사 이여송이 왜란을 진압하고 귀국할 때 팔공산 산세를 보고 조선 땅에 큰 인물이 날 것을 두려워 맥을 끊은 자리에 미륵불이 솟았다 하였으며 지금도 높이 2m, 폭 80㎝의 화강암으로 된 석불이 현존하고 있다.
- 노적봉
- 노적단(볏섬)을 쌓아 놓은 것같이 생긴 봉우리라 하여 노적봉이라 한다.
- 성인봉
- 성인이 내려와 놀다간 봉우리라 하여 성인봉이라 하며 현재 봉우리에 발자국이 있다 한다.
- 관봉
- 멀리서 보는 산형태가 갓모양같이 생겼다 하는데서 유래되었다.
- 옥정동
- 구슬같이 맑은 샘물이 사시사철 나온다는 유래에서 옥정이라 한다.
- 중심
- 신무·용수·미곡동의 중간에 위치한다 하여 중심이라고 불리웠다.
- 상중심
- 중심의 위쪽에 위치한다 하여 상중심이라 한다.
- 동산마을
- 현재는 산이었던 흔적만 남아 있으나 동네의 동쪽에 조그만 동산이 있던 마을이라 하여 동산마을이라 한다.
- 지장지
- 북지장사 절터를 닦을 때 땅속에서 부처가 나왔다 하며 북지장사에 있는 못이라 하여 지장지라 한다.
- 자리미
- 마을 뒷 동산이 자라의 목같이 생겼다는데서 유래되었다.
- 속골
- 마을 안에서 제일작은 골짜기(小)에서 유래되었다.
- 모고지
- 마을 앞에 모과나무가 정자를 이루고 있었다는데 유래되었다고 하고, 일명 목과정이라고도 한다.
- 중마을
- 스님가족들이 많이 모여 산다는 데에서 유래되었다.
- 모래정
- 모래가 많다는 데에서 유래, 일명 거(巨)듬이라고도 한다.
- 양방
- 선량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라는데 유래되었다.
- 도마재
- 산 모양이 도마를 뒤집어 놓은 것 같이 생겼다 하는데서 유래되었다. 성둑 옛성터가 있던 곳에서 유래하였으며 현재 성터의 흔적이 조금 있다.
- 안양배이
- 안쪽에 있는 양방이라는 데에서 유래되었다.
- 큰마
- 능성부락 중에서 가장 큰 마을이라는 데에서 유래되었다.
- 인산
- 어진산에 어진 인재가 많이 난다는 데에서 유래되었다.
- 당동
- 국수당 고개에 사당이 있었다는 데에서 유래되었다.
- 성두뜰(성둑)
- 지금은 인가는 없으나 옛날에 성의 둑을 쌓은 곳이라 해서 붙여진 명칭이다.
- 대왕재(댕재)
-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의 견훤과 격전하다가 패한 후에 그 고개에서 잠시 쉬어 갔다고 하여 대왕재라고 불렀다.
- 상리
- 높은 산기슭에 입지했다고 상리(上里)라 불리워진 듯하나 일설에는 공산면 서촌에서 제일 먼저 집터를 잡았다하여 명명된 것이라고도 한다.
- 지경(地境)
- 자료담당부서 기획예산과 박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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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수정일2023-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