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광동
평광동(坪廣洞)의유래
전체 면적 80%가 임야로 처음에는 넓은 마을이라 하여 광리로 불리어 오다 일제시 평광이라 개칭하여 8개 자연부락(시랑리·중시랑리·샛터·평리·섬뜸·아랫뜸·큰마을·당남리) 으로 경산군과 인접해 있으며, 추씨가 먼저 자리를 잡았다고 하나 현재는 "단양우씨"가 60%를 차지하고 있다.
실왕리(失王里)·시량리·시랭이
후백제가 신라 말에 신라를 침공하여 신라의 서울 경주가 함락 직전에 신라에서 고려 왕건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불로봉무동 소재 파군재에서 접전으로 고려 왕건이 크게 패하고 이 마을에서 임금을 잃은 곳이라 하여 실왕리라 전해오다, 조선 말에 수치스러운 지명이라 하여 '시랑리'로 고쳐 부르고 있다고 전해오고 있으며, 현재 시랑리와 시랭리로 불리어지나 시랑리가 정확한 표기이다.새터·샛터·직지
오래된 마을이나 인근부락에 비하여 늦게 형성되었다고 하여 샛터라 이르며, 한자로는 신기(新基)로 표기하고 있으며 또한 직기(直技)라고도 많이 불리어졌다고 하며 경주최씨 제실 삼호제가 있다.아래깍단
시랑리의 큰 마을 아래쪽에 있다 하여 아래깍단, 아래뜸이라 불리어지고 있다.큰 마을·큰마·남광
평광동 전체를 광리(廣里)라 부르고 있으나 좁은 의미에서는 큰 마을을 지칭하기도 하며 옛날에는 광리 남쪽 마을이라 하여 남광이라 부르기도 했으며 지금도 평광동 8개 자연부락 중 가장 큰 동네가 큰 마을이다.평리·북광
시랑리 마을의 북편에 위치한다고 하여 북광이라고 불리어지기도 했으며 인근 산지에 비하여 평평하다고 평리라 불리어지고 있다.당남리
경주김씨 집성촌으로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으며 지금도 거주하는 6가구가 전부 경주김씨이다.평광지
평광동 지역에서 면적이 제일크고 유일하게 먼저 설치된 못갈마골
갈령제 산이름을 따 그 골짜기를 갈마골이라 함.- 페이지 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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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 수정일
- 2023-12-18